<서울역 묻지마 폭행 사건>
2020년 5월 26일 낮 1시 50분경, 서울역에서 30대 여성이 30대 남성으로부터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 피의자는 여성에게 다가가 강하게 어깨를 부딪쳤고, 갑작스레 욕설을 했다. 여성이 화를 내자 남성은 여성의 안면을 주먹으로 가격했고 한차례 더 가격하려 했지만 여성이 소리를 지르자 폭행을 멈추고 달아났다. 이 사건으로 여성은 왼쪽 광대뼈가 부서지고 함몰되었고 왼쪽 눈가가 찢어져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사건 발생 일주일 후 피의자는 긴급체포 되었지만 구속 영장은 기각되었다. 재판부는 경찰이 피의자가 집에서 자고 있을 때 긴급체포한 것을 문제 삼으며 이것이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속을 면한 피의자는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본 사건을 범죄학의 수많은 이론들 중 갈등이론, 페미니즘 이론, 학습이론, 통제이론의 4가지 이론으로 분석해보고, 향후 우리나라 범죄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분석하려 한다.
1. 갈등이론의 관점
갈등이론에서는 법이라는 것이 본래 평등하지 않음을 지적할 것이다. 서울지방철도경찰대는 사건 초반 수사에 대한 지지부진한 태도를 보였다. 현장을 볼 수 있는 CCTV가 없다는 이유로 엿새째 피의자를 특정 짓지 못했고, 논란이 일자 경찰과의 공조를 통해 일주일 만에 피의자를 잡았다. 이번 사건은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단순한 폭행 사건일 뿐 그리 큰 이슈가 아니며, 기득권의 이익에 반하거나 위협이 되는 범죄가 아니었던 것이다. 공소 기각에 있어서도 갈등이론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행이 아닌 지배계급에게 큰 손실을 초래하는 중대한 범죄였을 때도, 재판부가 헌법 위반을 근거로 들며 똑같은 판단을 내릴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갈등이론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건 관련자들의 행위 이면에 숨겨진 작동 원리에 주목하게 한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커다란 원리에 집중하면서 사소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한계점을 가지는데, 가령 이번 사건에서 체포과정에서의 경찰의 헌법 위반 행위가 용인되고 간과될 수 있다.
2. 페미니즘이론의 관점
이번 사건은 젠더 우위에 있는 남성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가한 폭력으로 과연 상대가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어도 피의자가 똑같이 행동하였을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가해자에게 이전에 비슷한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는 피해여성이 등장했는데, 이는 결국 피의자가 남성성 표현의 수단으로서 여성만을 타겟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영장이 기각된 것도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며 다른 여성이 또 다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심각성에 공감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페미니즘이론은 사건의 초점을 피해자에 맞춰 개인의 피해가 아닌 여성이라는 존재와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 전반으로 문제를 확장시키고 있다는 강점을 지닌다. 또한 피해자 여성에게 연대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로까지 이어질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남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묻지마 범죄는 설명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젠더화해서 보게 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3. 학습이론의 관점
피의자는 체포 이후 수사 과정에서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고, 연신 졸리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며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피의자는 수년 전부터 정신병원에 갔던 경력이 있고, 구속이 기각된 이후에도 바로 정신병원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 같은 행동에 대해 학습이론에서는 피의자가 그동안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범죄자에게 정신병이 있을 경우 감형이 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으로 규정된 사람의 범죄 행위는 사회에서 어느 정도 용인되고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피의자는 정신병을 가진 사람으로 스스로를 상정하고, 정신병을 가진 자신의 범죄 행위는 이해될 것이라는 범죄행위에 대한 우호적인 가치를 학습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학습이론은 범죄자들이 왜 그토록 정신병을 강조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범죄자의 행위가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우호적인 가치에 의한 의도적인 것인지, 정말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한 행동인지 구별해서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4. 통제이론: 학자 허쉬의 관점
통제이론가 허쉬는 이번 사건을 피의자에게 범죄 행위를 억제하는 힘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경찰에 의하면 피의자는 검거 당시 집에서 혼자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홀로 집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피의자는 미혼이며 누군가와의 애착이 적은 상태로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시간에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관여와 참여 역시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의 범법 행위가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고 이전에도 여성을 상대로 비슷한 행동을 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규범에 대한 신념도 약하다. 피의자는 사회 유대의 4가지 형태가 모두 부족한 사람이기에, 통제가 적은 상황에서 쉽게 범죄행위로 이어졌다고 설명할 수 있다. 허쉬의 설명은 피의자 개인에 초점을 맞춰 피의자의 생애와 상황적 배경을 세밀하게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피의자 개인의 범죄 행위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이론이 되지만, 피의자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한계점을 지닌다.
<향후 필요한 접근 방향>
갈등이론과 페미니즘이론, 학습이론과 통제이론 모두 범죄를 설명하는데 효과적인 이론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갈등이론과 페미니즘이론과 같은 이면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이론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범죄에 대한 논의는 범죄 원인에 대해 설명하는 이론에 집중되어 있고, 범죄자 개인에서 벗어난 거시적인 차원의 논의가 적다. 페미니즘이론의 경우 최근 페미니즘운동을 기반으로 법에 의한 여성의 통제 등이 조금씩 이슈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여전히 일반대중들에게는 미미하고, 여성에 불리한 판결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문제제기하는 사람들도 적다. 갈등이론의 관점 또한 미미한데, 대중들에게 법은 그 자체로 객관적이고 평등한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페미니즘이론과 갈등이론은 법의 불합리성, 편파성을 지적하는 이론으로 크게 보면 같은 기류의 논의들이고, 페미니즘이론과 갈등이론이 세상을 변화하는데 힘을 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론이 떠오르며 여성에 대한 법의 편파성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넘어 사회적 약자 계급 전반의 문제로 논의를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이론과 갈등이론이 연대하여 법의 모순성을 고발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내며 보다 ‘평등한’ 법,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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