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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020-1] 현 코로나 사태를 통해 본 WHO의 조직 구조적 한계점 분석(1) : 관료제/다문화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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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코로나 사태를 통해 본 WHO의 조직 구조적 한계점 분석>



WHO는 유엔 산하 기구로 국제 보건 문제에 대한 지도 및 조정 기관이다. 보건 문제를 다루는 기관인만큼 WHO의 공식 목적은 독감 및 HIV와 같은 전염병, 암 및 심장병과 같은 전염성 질병을 포함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있다. 또한 산모와 아이들이 생존하고 번성하여 건강한 노년을 기대할 수 있도록 돕고, 사람들이 숨쉬는 공기, 음식, 마시는 물, 그리고 필요한 약과 백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다. 이에 따른 주요 업무 분야로는 보건 관련 자문, 보건 분야 정보 제공, 질병 근절 프로그램 전개, 예방 모니터링 및 대응, 음식 관련 국제 기준 설립, 보건 분야 연구 장려 등이 있다.
이처럼 전 세계인의 건강을 위해 다방면에서 일하고 있는 WHO이지만, WHO가 수행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다름 아닌 국제 보건 임무를 지도하고 조정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건강 관련 국제 이슈가 발생하면 WHO는 해당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판별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지침을 내린다. 국제 보건 임무를 지도하고 조정하는 선두 기관이자 전 세계 질병 컨트럴 타워로서 WHO는 현 코로나 사태와 관련된 전반적인 상황 역시 진두지휘하고 있다.
현재 세계는 코로나 쇼크에 빠져있다. 코로나는 전 세계 800만명이 넘는 인구를 감염시켰고, 50만명에 달하는 인구를 죽음에 이르게했다. 현재까지 수많은 인구가 희생되었음에도, 코로나의 확산세는 도리어 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확진자와 사망자가 추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전세계 경제는 마비되었고, 일부 국가는 국경을 차단한 채 고립상태를 자처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사람들 간 교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처럼 모두가 코로나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WHO(세계보건기구)를 향한 전 세계인의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비난의 요지는 WHO가 무책임한 태도로 코로나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데 있었다. 지난 3월, WHO는 코로나 사태가 악화되고 나서야 뒤늦게 팬데믹 사태(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으로, 세계적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선언했다. 이와 같은 늑장 대응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눈치를 보아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붉어지며, WHO를 사이에 두고 국가 간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WHO는 왜 코로나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일까? WHO가 늑장대응 논란에 휩싸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코로나 사태 이전, 에볼라 전염병이 유행했을 당시에도 WHO는 무책임한 대응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동일한 문제의 반복을 야기하는 WHO의 조직 구조적인 원인이 있으리라 판단했고, 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WHO의 조직구조적 특성을 크게 관료제적 측면, 다문화적 측면, 권력 불평등 측면으로 정리해보았다. 또한 WHO가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열린 체계임을 감안하여 외부 환경과의 관계적 특성을 추가하였다. 나아가 이와 같은 특성이 코로나 사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 구체적인 사례와 상황 유추를 바탕으로 분석을 진행해보았다.


1. 관료제적 측면

1.1. 관료제 이론

관료제는 베버(Weber)가 발전시킨 대표적인 합리적 조직 체계 이론 중 하나로, 합리성에 기반한 조직관리 모델을 제시한다. 베버는 권위(authority)를 전통적, 카리스마적, 합리적 권위로 구분하며, 정해진 규칙에 따라 부여되는 합리적, 법적 권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관료제는 개인의 특성이 배제된, 즉 탈인격화 된 조직관리모델이라 볼 수 있다. 베버가 제시한 관료제의 주요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업무를 보편적 조직규칙에 의해 수행한다.
(2) 업무가 분할되어 있고, 권한과 의무가 세분화 되어 있다.
(3) 피라미드 형태의 위계구조를 띠며 명령과 복종의 연쇄로 구성된다.
(4) 채용은 일련의 공식화된 절차를 걸쳐 이루어지며, 조직이 필요로 하는 적정 수준의 훈련된 자격이 요구된다.
(5) 승진이 가능하며 안정적인 고용 보장을 통해 충성심을 유발한다.

종합하자면 관료제는 명확한 계층에 기반한 명령체계, 정교한 업무분화, 공식화된 법규와 규칙을 특징으로 한다. 이처럼 관료제적 조직구조는 개인의 자의적 판단을 구조적으로 최소화 함으로써 조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조직운영을 가능케 한다. 또한, 사람에 상관없이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보장한다. 이에 따라 정부 조직을 비롯한 여러 조직들이 관료적 형태를 따르고 있다.
위 이론적 특성에 비추어 보아 WHO(세계보건기구) 역시 전형적인 관료제 형태의 조직으로 볼 수 있다. 우선, (1) 업무 처리에 관한 엄격한 규칙과 절차가 존재한다. 가령, WHO는 예산 및 결산, 사업 수립 및 운영방안 확정에 관해 집행이사회의 검토와 총회의 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또한, WHO는 (2) 세부 조직에 따라 업무와 권한이 분할되어 있고, (3) 명령과 복종의 연쇄로 구성된 위계적인 조직 구조를 지닌다. 구체적으로는 연 1회 194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하는 총회, 총회에서 선출한 34개 이사국이 지명한 전문가로 구성되는 집행 이사회, 사무총장의 지휘 하에 업무를 수행하는 본부 사무국과 6개의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지역기구로 구성된다. 총회와 집행이사회는 주요 사업 및 예산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지니며, 사무국은 결정된 사항을 구체화시켜 실현한다. 이때, 지역 사무국은 제네바 본부 사무국의 하위 조직으로 본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마지막으로, (4) 여느 정부 조직과 마찬가지로 WHO는 공식적인 채용 절차를 통해 공무원을 고용한다. WHO에 취업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학 능력, 전문 자격증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공채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또한 (5) 여타 공무 조직에 비해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승진이 가능하다. 일반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정년이 보장된다.

1.2. WHO의 관료제적 특성이 코로나 대응에 미친 영향

그러나 효율성을 담보하고자 하는 본 취지와 달리 관료제는 현실적인 한계점을 지닌다. 베버는 ‘철장’이란 표현을 통해 유연성 저하와 창의성의 결여를 관료제의 부작용으로 꼽았다. 머튼(Merton)은 의례적 행위가 반복되고 활동의 유연성이 떨어지면서 ‘목표의 전도’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블라우(Blau)는 ‘자유재량이나 판단의 박탈’과 ‘적당주의’, 톰슨(Thompson)의 경우 ‘번거로운 서류 처리와 행정절차(red-tape)’, ‘목표와 수단의 전도 현상’, ‘인간 소외’ 등을 관료제의 부작용으로 꼽았다.

WHO 역시 전 세계를 관할하는 비대한 관료제 조직으로서 관료제적 비효율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코로나 늑장 대응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지난 에볼라 사태 당시, WHO는 늑장대응의 원인을 분석한 내부 보고서를 내놓았고, 과도하게 관료화된 조직 구조를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였다. 지역 사무소가 해당 지역의 특성과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음에도, 제네바 본부의 지시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융통성 있는 대응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현 코로나 사태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지난 2019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몇 달 전에 WHO는 지역 사무국과 본부 간 소통의 지연이 신속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는 내부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경직된 관료제적 구조로부터 비롯된 업무 지연이 코로나 대응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리라 사료된다. 본부의 지침이 내려오기 전까지 지역 사무소의 대응은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고, 본부가 이처럼 광범위한 질병의 지역별 현황을 단기간 내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구조적 한계로부터 비롯된 고질적 업무 지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WHO는 다시금 늑장대응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2. 다문화적 측면

2.1. WHO의 다문화적 특성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일하는 국제 조직인 만큼 WHO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대규모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6개 지역(Eastern Mediterranean, Europe, Africa, Pan American, Western Pacific, South East Asia)에 총 150개 이상의 지사를 두고 있으며 도합 7,000명 이상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위 그래프는 WHO 공식 홈페이지에 기재된 직원 정보를 토대로 WHO 구성원들의 출신 지역 분포를 백분율로 나타낸 것이다. 6개 주요 지역별로 직원들을 분류한 결과, EURO(Europe) 31%, WPRO(Western Pacific) 26% SEARO(South East Asia) 18%, EMRO(East Mediterranean) 10%, PAHO(Pan America) 10%, AFRO(Africa) 5% 순으로 나타났다. 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하면 지역별 직원수가 고르게 분포된 편이라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WHO가 다국적 직원들로 구성된 조직이며, 문화적 다양성이 WHO 조직의 주요 특성 중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2.2. 다문화적 특성이 코로나 대응에 미친 영향

높은 문화적 다양성은 조직의 역동성을 높여주지만 원만히 조율되지 못할 경우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문화적 갈등이 구성원과 조직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기존 여러 연구들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Rao와 Schmidt의 논문에 따르면 조직 내 구성원들은 문화적 갈등을 느끼지 않을수록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유사한 집단으로 간주하는데 반해 문화적 갈등을 느끼는 경우에는 상대방을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고, 이해하기 힘들어 하고, 신뢰하지 않으며, 비협조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 또한 문화적 갈등은 구성원들의 긍정심리자본(업무 만족도, 조직 몰입, 업무 성과 등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자본)에 부(-)의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WHO의 경우 안타깝게도 직원들 간 문화 갈등이 제대로 해결되고 있지 않다. WHO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인터뷰에 따르면, “조직 내에서 문화 차이로 인해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한 직원들이 많았다. 일례로 한 직원은 “우리는 같은 것을 같게 보지 않는다. 똑같은 발표여도 누군가는 그것이 훌륭했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무례했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내가 이탈리아 사람이어서 차별받는 것 같다. 내 고유의 문화를 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WHO에서 일하기 위해선 그래야만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처럼 문화적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과 불만은 업무처리의 비효율성을 야기하게 된다.
내부 문화적 갈등은 관료제적 특성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지적 되어 온 WHO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이다. 비록 코로나 사태에 국한된 조직 내 갈등의 사례는 찾을 수 없었지만, 평소 구성원 간 문화적 갈등이 원활히 해소되지 못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역시 이러한 조직 내부적 한계가 초기 대응 실패의 간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유추해 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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